애물단지 유령 건물이 청춘들 보금자리로
애물단지 유령 건물이 청춘들 보금자리로 온건축 박현진 대표의 셰어하우스 ‘짱가’
짓다 만 건물 찾아 리모델링
서울시 빈집 프로젝트에 참가
대학생ㆍ사회 초년생 둥지로
클라우드 펀딩 2호점도 추진
지난해 가을 후암동으로 이사한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사옥. 1층에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짱가’가 있다. 배지훈 제공
서울 남산도서관 아래, 후암동 오래된 골목에 노란색 건물이 들어섰다. 서초동에 있던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가 지난해 가을 이사하며 마련한 새 보금자리이자,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짱가’의 건물이다.
건물 1층에 마련된 짱가는 1인실 하나와 2인실 두 개로, 총 5명의 입주자가 거실과 주방, 마당을 공유한다.
방세는 2인실 월 30만원, 1인실 46만원. 보증금은 월세 두 달 치다. 입주대상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으로 한정했다. SNS에
서 입주자 모집을 시작한 지 보름도 안 돼 짱가의 방들은 모두 주인을 찾았다. 20~30대의 대학생, 제빵사, 회사원들이다.
‘지하 옥탑방 고시원’ 주거지옥에 갇힌 청년들
“이 건물이 2008년부터 방치된 유령건물이었어요.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들이 들락거려 주민들이 불안해하니까 경찰이 건물 앞에 노란색 테이프를 쳐 놓기도 했죠.”
박현진 온건축 대표는 지난해 새로 이사할 곳을 물색하다가 후암동 골목에서 짓다 만 건물을 발견했다. 건물주와 시공업체 간 불화로 버려진 건물은 날림 공사에 준공검사도 안돼 있어 경매로 나와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리모델링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건물을 인수한 박 대표는 도면과 일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시공 상태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온건축 사옥으로 리모델링하기 전의 건물. 유령 건물로 8년 간 방치돼 있어 주민들의 원성이 컸다. 배지훈 제공
2층에 주차장과 전시장, 3층 사무실, 4층 주거공간, 5층 옥상으로 공간을 배치한 뒤 박 대표의 고민은 1층의 용도였다. 이사하느라 낸 대출 때문에 일찌감치 임대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다르게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지옥고’란 말이 있죠. 지하, 옥탑방, 고시원. 젊은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서울은 점점 최악의 도시가 돼가고 있어요.”
청년주거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서울시 ‘빈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더 커졌다. 빈집 프로젝트는 서울시와 사회적기업이 6개월 이상 방치된 빈 집을 고쳐 노인, 대학생, 여성 등 사회 취약계층에게 시세의 80%로 최소 6년 간 임대해주는 프로젝트로, 지난해 빈집 13곳이 리모델링됐다. 입주비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35만원 안팎.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것도 높대요. 거주비도 부담이지만 더 큰 문제는 거주의 질이죠. 창문 하나 없이 제 몸 하나 누이면 끝인 고시원에서 그나마 단독 화장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데 매달 40만원 넘게 내야 하니까요.”
박 대표는 게스트하우스로 기울던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청년전용 셰어하우스를 택했다. 방 3개와 거실, 주방으로 이뤄진 짱가는 18평 가량으로, 넓진 않지만 구석구석 편의를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각방마다 화장실을 만들었고 지방에서 올라와 짐이 많을 청년들을 위해 거실벽을 따라 수납장을 넉넉히 짜 넣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위층으로 가는 통로도 따로 만들지 않았다. 짱가로 가려면 집주인도 골목을 한 바퀴 빙 돌아가야 한다.
셰어하우스 짱가의 2인실 중 하나. 침대 아래 책상을 배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짐은 바깥 수납장에 넣을 수 있게 했다. 각 방마다 화장실도 따로 만들었다. 배지훈 제공
짱가의 거실. 입주자들이 가장 환영하는 것이 공용공간이다. 침대 하나로 꽉 차는 고시원과 달리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배지훈 제공
첫 입주자는 모집 공고가 나기도 전에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서울역 인근에서 회사를 다니는 30대 사회초년생으로, 직전까지 고시원에서 월 45만원에 살았다고 한다. 1인실로 입주하면서 방세는 1만원이 더 오른 셈이지만 입주자는 대만족이다.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점은 공용공간의 유무. 작지만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은, 누워 자는 것 외엔 달리 할 게 없는 고시원과 달리 다양한 활동들을 허용한다. 현관 앞 하얀 자갈을 깐 마당과 간이벤치 등도 삶에 소소한 풍경들을 더해준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는 옥상이다. 박 대표는 옥상 베란다에 데크를 깔아 사무실 직원들과 자주 바비큐 파티를 여는데 짱가 입주자들도 여기에 함께 한다. 파티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옥상을 사용할 수 있는데, 남산타워가 있는 방향으로 액자틀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어 놓아 그 안에 그림처럼 담긴 남산타워를 감상할 수 있다. “그냥 탁 트인 데서 보는 거랑 프레임 안에 담아서 보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거든요. 이왕에 남산 근처로 왔으니까 제대로 느껴야죠.” 나머지 입주자들도 최근 확정됐다. 2인실 중 하나엔 30대 초반의 제빵사와 학교 행정직원이 들어왔고 다른 방엔 올 여름 대학생 두 사람이 입주할 예정이다.
온건축 식구들과 짱가 입주자들이 사용하는 옥상 베란다. 노란색 벽과 대비되는 진회색 강판으로 구조물을 만들어 멀리 남산타워를 액자에 담듯이 담았다. 배지훈 제공
짱가의 출입문. 흰자갈로 작게 마당을 만들고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도 마련해 두었다. 온건축 사무실 출입문과 분리돼 있어 사생활 침해 염려가 없다. 배지훈 제공
“조금만 덜 가지는 것, 왜 이렇게 힘들까요”
박 대표는 클라우드 펀딩의 방법으로 짱가가 2호점, 3호점으로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 지금 짱가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대출 이자를 갚는 정도밖에 안되지만 투자자들이 생기고 기업형으로 바뀌면 수익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셰어하우스 하나를 관리하는 것과 열 개를 관리하는 건 크게 차이가 없거든요. 펀드에 투자하듯이 이런 데 투자하면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집주인들이 매년 당연한 듯이 월세를 올리는데 그런 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거죠.”
박 대표는 몇 년 전 이스라엘에 벤처기업 탐방을 갔다가 현지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할 때 얼마나 돈을 회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작은 회사들이 살아나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둬요. 투자 받는 쪽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성공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고요. 정부나 사회단체가 아니라 기업이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그는 짱가를 일종의 사회적 실험으로 여긴다. 위에서 아래로의 흐름이 막혀버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민간차원에서 인식 전환이 없으면 이런 시도도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 되겠죠. 조금만 덜 가진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우린 그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